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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은 서로 다른 시각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육식동물은 얼굴 전면 중앙부에 두 눈이 있고, 토끼나 사슴처럼 먹이사슬의 아랫쪽에 있는 초식 동물은 얼굴이 좌우 측면에 따로 따로 눈이 있지요.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금방 아시겠지만, 그 차이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숙명 때문입니다.

 

도망이 최대 생존 무기인 초식동물은 천적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항상 주변 경계를 해야만 합니다.  더 넓은 시야 확보를 위해 두 눈이 양 옆에 있는 것이죠.

 

반대로, 육식동물에게 주변 경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사냥에서 성공률을 높이는 일이죠.  그리고, 눈 앞에 먹잇감이 아무리 많아도 한번의 사냥에서 잡을 수 있는 먹이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먹잇감에 집중할 수 있도록 두 눈은 모두 앞쪽을 향합니다.  시야는 초식동물에 비해 좁지만, 대신 두 눈으로 목표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거리감을 갖게 되지요.  야생에서 한쪽 눈을 잃은 맹수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람은 어떨까요?  만물의 영장 인간은 시야의 범위, 시력 모두 동물들에 비해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미약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해 내는 독특한 DNA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초식동물보다 더 넓게, 육식동물보다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눈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식견" 이라고 말하지요.

 


 

옛 말에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안다" 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저 마다의 식견과 견문의 정도에 따라 사물을 보는 각도와 깊이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지요.  대체로 이럴때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 그만큼 시야가 좁아져 주변의 위험요소를 제대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먹잇감을 보고 나아가지만, 발 밑에 작은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를 예견했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말대로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세상은 변했고 지금 이 순간도 변화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얼음고 물의 화학구조는 동일하고, 온도차이 또한 1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 1도 차이가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듯이 인간의 식견 또한 그러합니다.

 

"우물안 개구리" 가 아닌, "세상을 보는 안목과 식견" 을 넓히는 일이 있다면 우리 한번 신명나게 해보는 것이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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